불타기념관의은 2003년에 안기식(기공식)을 갖고, 9년에 걸친 공사기간을 거쳐 2011년 12월 25일부터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사리(sarira)는 범문(梵文)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수행자의 유골에서 나오며 보통 결정체로 형성된다. 이는 한 수행자가 오랜 기간 수행한 공덕의 결과물로 상징된다.
석가모니불전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여든살이 되시던 어느날 당신의 열반 날짜를 선포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의지할 지도 자를 잃을 것에 대하여 걱정하였다. 제자 아남이 부처님 열반후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여쭈어보았다. 부처님께서는 심사숙고 끝에 이르시기를 “내가 입적(圓寂)한 후 다비(荼毗)가 끝나거든 너희들은 사리를 모아, 사거리에 탑사를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참배하며 신앙심이 생기게 끔하거라.”라고 하셨다.
최초에, 이 치아사리는 인도에서 천년 가까이 은밀히 보존이 되어 오다가, 13세기 회교도들이 인도에 대거침입하여 부처님의 치아사리는 인도의 날란다(Nalanda, 那蘭陀) 사원에서 비밀리에 티벳으로 건너가 남걀사원(SakyaNamgyal Monastery)에 모셔졌다(1968년 중국문화대혁명때 파괴당함). 이 치아사리를 지키기 위해, 티벳라마 꽁가도제린포체(KungaDorje Rinpoche)는 천신만고 끝에 치아사리를 다시 인도로 모시고 가 30년 간은 밀히 모셨다. 세월이 흘러 연세가 드신 꽁가도제린포체(KungaDorje Rinpoche)는 당신의 생전에 치아사리를 공양할 불아사(佛牙寺)를 세우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러던중 1998년 2월에 성운대사께서 삼단대계(三壇大戒)를 전수하러 인도로 가시게 되면서, 치아사리(佛牙)를 친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꽁가도제린포체(KungaDorjeRinpoche)는 정법구주(正法久住) 차원에서 열두분의 덕망 높은 린포체(Rinpoche: 티베트불교의 영적지도자에 대한 존칭)들의 승인을 얻어, 치아사리를 법계중생들을 제도하려는 큰 뜻을 가지신 성운대사께 전달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2달 후 대만으로 이운된 치아사리(佛牙)는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성운대사께서 불관을 세운 목적은 불타를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리고, 불타를 가까이 함과 동시에 수행으로 깨우침을 얻게 하는데 있다. 불타를 공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대중들의 필요를 고려하여 세운 것이라고 뜻을 밝히시고 있다.